로미가 나랑 15년을 살았잖아. 근데 생각해보면 진주 그년도 참 책임감 없지. 지 유학 간다고 다 큰 고양이들을 어디다 보낼지 고민했잖아. 자기 의지로 데려온 미미만 어떻게든 미국 데려가려고 했고 말이야. 솔직히 나한테 은근슬쩍 말을 꺼냈을 때 내가 맡아주길 내심 바랬던 게 아닐까 싶어.
근데 또 생각해보면 그렇다. 이제 대학 졸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나이에 앞날이 어찌 될 줄 알고 고양이를 안 키우냔 말이지. 너도 알잖아. 고양이 요물인 거 한번 키우면 절대 못 끊는 거. 근데 또 따지고 보면 미미도 놀이터에서 초등학생들이 괴롭히던 거 검은 봉지에 넣고 집에 데려와서 얼떨결에 키웠고, 친한 언니가 도도를 하도 괴롭혀서 불쌍해서 데려왔다고 했잖아. 근데 또 로미는 어땠게? 친구가 생일선물로 남자한테 받은 거 마지못해 키우다가 어느 날 신발장에 똥 쌌다고 노발대발하면서 새끼 뽑는 농장에 보내버린다는 거 불쌍해서 데려온 거잖아. 이렇게 보면 진주가 책임감이 또 없는 건 아니야. 아니다. 측은지심이라고 해야 되나.
나는 또 어땠게.
베꽁이만 키우다가 진주가 고민한다고 덥석 세 마리 다 내가 데려온다 했잖아. 나도 측은지심이었지 뭐. 내가 그 후로 십오 년간 얘들하고 지지고 볶고 살게 될 줄 예상이나 했겠냐고. 내 청춘을 바칠 줄 알았겠냐고. 나는 뭐 고양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냐? 그것도 아니야. 베꽁이 순딩인 거 알잖아. 난 그냥 고양이 세 마리 데리고 오면 베꽁이랑 친구처럼 지낼 줄 알았지. 그나마 생각한 게 로미는 사람 좋아하니까 아무 집이나 가도 잘 살 거라는 진주 말만 듣고 엄마 남자 친구한테 맡아달라 한 거지. 진주가 그랬어. 미미는 사나워서 안되고 도도는 사람을 물어서 안되고, 로미는 사람을 좋아하니까 괜찮을 거라고.
그렇게 도도랑 미미랑 베꽁이랑 셋이 살았잖아. 근데 나 없을 때 미미가 베꽁이를 우리 집에서 쫓아내려고 괴롭히고 때릴 줄은 몰랐지. 나 그때 핸드폰 대리점 울며 겨자 먹기로 다니다가 스트레스로 병 걸렸던 거 알지? 근데 집에 오니까 베꽁이가 이불에 똥오줌을 싸놓은 거야. 너무 화가 나서 베꽁이한테 화내고 소리를 질렀단 말이야. 근데 알고 보니까 미미가 베꽁이를 구석에 몰아넣고 아무 데도 못 가게 해서 베꽁이가 내가 덮었던 이불에 내 냄새난다고 그나마 안전하다고 느껴지는데 싸놓은 거였 단말이지. 성묘 합사가 어렵다는 거 그때는 몰랐어. 나중에 엄마가 또 어디서 버림받아서 불쌍하다고 시로를 데려왔을 때 시로 그 미치광이가, 등치만 큰 어린애가 애들을 다 물고 때리고 난리를 쳐서 이러다 한 마리는 죽겠구나 싶어서 엄마가 시로 데리고 남자 친구네 들어가서 살게 됐잖아. 뭐 결과적으로 난 혼자서 애들 건사하면서 살게 됐고, 뜻밖에 독거생활을 하게 됐지. 이렇게 따지면 시로한테 고마워해야 되나 싶기도 하고 그러네.
어쨌든, 로미가 왜 다시 우리 집으로 왔냐 하면 미미 때문이지. 미미한테 괴롭힘 당하다 베꽁이 방광염 걸려서 피오줌을 줄줄 싸는 거 보고 이러다 내 새끼 죽겠다 싶어서 미미를 엄마 남자 친구네로 보내서 원래 있던 로미에다가 미미까지 아저씨랑 살게 됐지.
그러다 진주가 미미만 부모님께 허락받아서 그집으로 보냈고, 근데 또 아저씨가 혼자 로미 키우는게 벅차다 그래서 로미가 우리 집에와서 도도, 베꽁, 로미 이렇게 살게된거지.
그러니까 로미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아무 데나 가도 잘 사는 로미니까 여기저기 맡겨진 거지. 그렇게 사람 네 명을 거치고 마지막에 나랑 살게 된 거야.
그때는 별생각 없었어. 나야 뭐 고양이가 둘이던 셋이던 별로 큰 부담이 안되니까 그냥 키운 거지 뭐. 로미의 마지막 사람인 나조차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니까.
그러니까. 너무 사람을 좋아하면 안 돼. 사람을 좋아하는 게 고양이한테 얼마나 독이 되는지 말이야. 베꽁이처럼 나밖에 모르는 고양이었어봐.. 내가 진짜 무슨 일이 생겼다고 내가 딴 집에 맡길 거 같아? 절대 못 그래. 베꽁이는 나밖에 모르잖아. 그걸 알면서 어떻게 그래. 근데, 로미는 너무 쉬운 고양이인 거지. 아까도 말했지만 진주가 그랬다고 했잖아. 도도는 물어서 안되고 미미는 사나우니까 제일 쉬운 로미를 제일 먼저 다른데 보내려고 생각했다고.
근데 내가 로미랑 살면서 느낀 건데 로미는 보통 고양이가 아니야. 나를 거쳐간 고양이 중에서 로미만큼 자존감 높고 자기 의사가 뚜렷한 고양이를 본 적이 없어. 만지는 건 그렇게 좋아하면서 안는 건 절대로 못하게 해. 그게 말이 되는 거야? 만지는 걸 좋아하면 안는 것도 좋아해야 될 거 같은데 그러니까 의사표현이 명확한 거지. 처음에 어이가 없었다니까. 궁둥이 두들기라고 들이대서 열심히 두들기다가 다른데 만지거나 무릎에 앉히려고 하면 난리를 친다니까. 얼굴 만지는 것도 좋아하긴 했어.
이번에 로미가 아플 때도 솔직히 나는 믿어지지가 않더라고, 전에 언니가 태이 낳고 우리 집에서 산후조리했었잖아. 그때 로미가 갑자기 밥 안 먹고 기운이 없어서 병원 갔는데 복막 염일수도 있다고 치료방법이 없으니 죽을 수 있다 그래서 만박이랑 병원에서 펑펑 운 거 알지? 그래서 죽기 전에 맛있는 거나 많이 먹으라고 사료 한 알 한 알 손으로 떠먹여 주고 엄마, 언니, 형부까지 온 식구가 매일매일 궁둥이 팡팡을 정말 극진히 했단 말이지.
그러니까 어떻게 됐게? 언제 아팠냐는 듯이 싹 나았잖아 로미가. 병원에 물어보니까 그럼 우울증이었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 참나.
생각해보니까 그러네. 로미는 사람을 좋아하잖아. 언니 산후조리한답시고 수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왔다 갔다 해서 사람을 좋아하는 로미는 신났단 말이지. 근데 아무도 로미를 안 봐줘. 갓난아기만 안고 왔다 갔다 해. 그 많은 사람들이 로미를 안 봐주네. 그러니까 로미는 ‘아 우울하다.’ 이렇게 된 거잖아.
그게 2014년이었고, 3년 전 로미가 신부전 3기 진단받았을 때 얘기를 해볼까. 나는 그때 로미가 변비인 줄 알았지. 똥 싸다가 울고 토하고 그러니까, 그래서 배를 만져봤는데 살이 너무 쪄서 배속에 똥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별생각 없이 동네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었잖아. 근데 그 선생님이 2차 병원 가서 초음파도 찍어보라고 했을 때 뭔가 심상치 않았어. 결국 신부전 3기에 급성 췌장염 진단을 받고 또 집에 와서 극진히 보살펴드렸지. 로미는 대접받는걸 엄청 좋아한단 말이야. 사실 처음에 피하 수액을 집에서 해주라는 선생님 말에 자신 있게 내가 집에서 한다고 말하고 열심히 배웠단 말이야.
너도 알다시피 내가 우리 고양이들보다 분리불안이 더 심하잖아. 그래서 도도가 그 빌어먹을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개구 호흡하고 새벽에 응급실 갔을 때, 산소를 공급해줘야 된다 그래서 입원시키고 다음날 가보니까 그 먹보 식탐 쟁이 도도가 하나도 안 먹었단 소리에 당장 집에 데려와서 산소발생기 대여하고 집에서 케어했잖아. 내가 다른 건 몰라도 그쪽으로 되게 자부심 있는 거 알지? 내 새끼는 내가 돌본다. 이런 마인드야. 왜냐면 내 눈에 애들이 안 보이면 내가 더 무서워. 내 곁에 없는 게 너무 힘들단 말이야. 당연히 고양이들도 그렇겠지? 그렇게 믿고 싶어.
어쨌든 호기롭게 '내가 피하 수액 놔줄게요!!' 이러고 데려왔단 말이야. 근데 너 생각해봐. 너는 니 새끼 몸에 바늘 꽂을 수 있어? 못하겠더라. 잘못해서 근육을 찌르면 피가난대. 분명 병원에서 선생님은 되게 쉽게 했던 거 같은데 내 새끼 몸에 주삿바늘을 꽂으려니까 못하겠는 거야. 그래서 아픈 고양이 카페 들어가서 미친 듯이 검색을 했어. 근데 거기도 나처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그러니까 이런 댓글이 있더라.
‘못 꽂으면 내 새끼 죽는다. 생각하고 해 보세요. 처음이 어렵지 나중엔 쉽습니다. 마음 단단히 먹으세요.’ 그래서 마음을 다잡았어.
그래서 내가 잘 꽂았을까?
아니지. 또 손을 벌벌 떨다가 화장실에 가서 막 울었어. 근데 운다고 뭐가 달라져? 어차피 해야 되는 거야. 그래서 마치 영화처럼 (지금 생각하면 좀 쪽팔리지만) 거울을 보면서 내가 스스로 따귀를 막 때렸어. ‘정신 차려. 이 새끼야. 네가 못하면 로미 죽는다. 로미 죽는 거 볼래?’
이러고 세수하고 나서 한 번에 팍 꽂았어. 그런데 성공.
너무 기쁘더라고. 수액 들어가는 시간이 천년 같긴 했지만 너무 뿌듯하더라고. 이렇게 집사 자부심이 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지. 다행히 로미는 수액 맞은 뒤로 오히려 전보다 컨디션이 훨씬 좋아졌고 역시 우리 로미는 질기다 질겨. 이런 생각도 했어.
그리고 시간이 벌써 3년이 되어가고 로미는 스무 살이 되었네.
고양이가 스무 살이면 사람 나이로 몇 살일까. 네이버에 고양이 나이 계산기를 쳐보면 ‘21살’이 끝이더라. 더 이상 사는 고양이가 별로 없단 뜻이겠지.
그래서 또 집사 자부심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올해 1월 1일이 되자마자 로미 스무 살 됐다고 자랑스럽게 인스타에 글을 올렸지. 그리고 세 달이 지났어.
그날은 공교롭게도 4년 전 도도가 죽은 날이었어.
로미가 어느 날부터 뒷다리 한쪽을 잘 못 구부리더라고, 뭐 스무 살인데 그럴 수도 있잖아. 근데 다음날은 아예 못 구부리고, 그다음 날은 다른 한쪽 뒷다리도 잘 못쓰더니 얼마 안 가서 제대로 걷지를 못하더라. 늙으니까 그럴 수도 있어. 그렇다고 병원에 안 가면 집사로서 책임감이 없어 보이니까 병원에 갔지. 로미를 보자마자 선생님이 노쇠해서 그렇대. 뒷다리 근육이 하나도 없다는 거야. 근데 왠지 안심이 되더라고. 다른 데가 아픈 게 아니라 늙어서 그런 거니까. 뭐 누구나 늙으면 다 아픈 거잖아.
간 김에 오랜만에 피검사도 했어. 근데 신부전 말기래. 그리고 췌장염 수치가 어마어마하게 높대. 그래서 해줄 게 없대. 진통제라도 놔주면 안 되냐니까 그럼 신장이 약해서 쇼크가 와서 죽을 수도 있대.
그래서 그냥 집에 왔지. 그때까지만 해도 로미는 겨우겨우 비틀거리면서 걸을 수는 있었거든. 화장실은 못가니까 전기방석 옆에 깔아준 배변패드로 옮겨서 오줌 쌀 수 있는 정도였어.
그래 뭐 늙었으니까 갈 때도 됐지. 언제 죽어도 이상한 나이가 아니야. 그런데 이렇게 죽는다고? 이러다 로미가 죽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위에 말한 집사 자부심 중에 내가 또 하나 가진 게 뭐냐면 ‘나만큼 내 새끼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였어.
내가 유이랑 도도를 보내면서 느꼈거든. 아 고양이가 죽기 전에 눈빛이 맛이 가는구나. 그렇담 로미 눈을 유심히 살펴봐야겠다. 하고 말이야.
그런데 어땠는 줄 알아?
로미는 죽기 5분 전까지도 눈빛이 살아있었어.
로미가 죽던 날 로미가 유난히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면 믿어져?
병원 다녀오고 사람으로 치면 죽도 아닌 미음만 하루 한 컵 겨우 먹다가 또 삼일은 내내 굶다가 다시 이틀은 잘 먹다가 다시 이틀을 안 먹고 있었어 로미는.
근데 그날 밤 개구 호흡을 하더라고, 도도가 죽기 전에 그랬거든.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아팠던 날 말고, 도도는 죽기 한 시간 전쯤부터 개구 호흡을 하다가 죽었단 말이야. 고양이는 너무 아프면 그렇다고 하대.
로미가 개구 호흡을 하길래 '아, 갈 때가 됐나 보다,' 하고 옆 동에 사는 엄마를 불렀지. 근데 로미가 다시 괜찮아진 거야. 그리고 또 밥을 받아먹더라고. 그래서 ‘아 우리 로미 정말 질기다. 아직 가기 싫은가 보네’ 이러고 안심했지 뭐야.
나는 로미 병간호를 한지 한 달이 되어가고 있었고, 잠을 제대로 자본적이 없어서 너무 피곤했지. 그래서 엄마한테 맘 놓고 자고 싶으니 로미를 봐달라고 처음으로 부탁했어. 알다시피 내 새끼는 내가 챙기는 게 편하니까 끝까지 엄마한테 부탁을 안 하려고 했는데 이러다 내가 죽겠더라고, 그래서 엄마한테 처음으로 부탁을 했지.
그러고 한 다섯 시간 잤나. 엄마가 나를 깨우면서 ‘야 로미, 쌩쌩하다. 아직 갈 때가 아닌가 보다.’ 이러는 거야.
근데 진짜로 애가 괜찮아 보이더라고. 나를 보더니 계속 만지라고 머리를 들이미는 거야. 밥도 계속 줘봤는데 전에는 먹기 싫다고 홱 고개를 돌리다가 마지못해 몇 번 혀로 챱챱하고 말던 애가 밥을 보더니 한숨을 푹 쉬고 밥그릇을 베고 자는 척을 하는 거야. 너무 귀엽고 웃겼지. 밥은 됐고 만지기나 하라는 듯이 자꾸 아웅 아웅 하면서 고개를 들이밀더라고.
한참 만져주다가 배달 온 밥을 먹고 있는데 로미가 나를 자꾸 불러. 그래서 돌아보면 만지래. 그래서 밥 먹다 말고 만져주고, 밥 먹고 있으면 부르고 또 만져주고 그래서 밥도 제대로 못 먹었지. 근데 내가 화장실에만 가도 자꾸 부르는 거야.
원래 로미가 병원 다녀온 후로 아파서 목소리가 제대로 안 나왔거든. 입만 벙긋벙긋했단 말이야. 근데 병원 다녀오고 그렇게 크게 야옹 소리를 내는 건 처음 봤어. 그래서 얼른 밥을 치우고 아예 로미 옆에 자리를 딱 잡고, 아이패드로 영화를 틀어놓고 한 손으로 로미를 정말 열심히 만져줬어.